메르세데스-벤츠 A클래스가 한국 땅을 밟은 지 7년이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국내에선 해치백 세그먼트에 대한 선호도가 낮고 브랜드 내에서는 C와 E, S클래스 인기가 워낙 뛰어나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A클래스는 데뷔 후 줄곧 브랜드 막내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1세대는 1997년 제네바모터쇼에서 나왔다. 출시 초기에는 3도어에 공간 활용성을 강조한 독특한 MPV 성격을 지향했다. 하지만 2세대로 넘어오면서 B클래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본격적으로 해치백 시장에 발을 담갔다. 르노와 공동 개발한 엔진을 탑재해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패밀리룩 디자인을 맞춰 프리미엄 차의 성격을 강조했다.
회사는 A클래스를 바탕으로 CLA와 GLA같은 다양한 컴팩트카 라인업도 구축했다. 그만큼 벤츠에게 있어서 A클래스는 신규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이자 주요 차종 중 하나다. 그리고 마침내 2018년 4세대 신형이 나왔다. 차체 크기를 키우고 커넥티드 시스템인 MBUX를 처음으로 넣어 새 소비층을 공략했다. 국내에는 작년 하반기 해치백 가솔린 단일 트림이 먼저 출시했고 올 상반기 세단 버전도 선보일 예정이다.
신형 A클래스는 크기부터 이전 세대와 차이를 보인다. 신형은 길이 4,410㎜ 너비와 높이가 각각 1,795㎜, 1,430㎜다 3세대 대비 길이는 65㎜ 길어졌고 15㎜ 넓어졌으며 5㎜ 낮아졌다. 덕분에 한층 역동적인 자세를 구현했다. 전면부는 인상이 강렬하다. 귀여웠던 예전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날카롭게 꺾인 LED 주간주행등과 가로로 길게 뻗은 그릴의 힘이 컸다. 윗급인 CLA를 비롯해 CLS와도 많이 닮은 모습이다. 범퍼는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마무리해 부담을 최소화했다. 옆은 깔끔하다. 아치 모양의 커다란 유리창과 도어 위로 흐르는 반듯한 캐릭터라인, 살짝 각도를 눕힌 트렁크 라인이 이상적인 해치백 형태를 보여준다. 뒤는 테일램프의 변화가 크다. 크기를 키우고 가로로 길게 디자인해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A클래스 배지는 트렁크 아래쪽으로 옮겨 달았다. 이 외에 스포일러와 범퍼는 단정하게 디자인했다.
실내는 일취월장했다. 이전 A클래스를 가득 덮었던 무광택 플라스틱 소재는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지름이 큰 스티어링 휠과 3개의 원형 송풍구, 공조장치 버튼과 센터 터널 주변도 온통 신선함으로 가득하다. 전자식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모니터는 요즘 벤츠 차들에서 봤던 익숙한 모습이다. 다만 계기판 크기가 작은 건 다소 아쉽다.
그래픽이나 UI 구성은 불만이 없지만 MBUX의 자랑인 음성인식은 10번 중 3번은 실패했다. 인식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내비게이션은 없고 조수석은 수동 시트다. 스티어링 휠은 우레탄 소재이며 탄소섬유 느낌의 대시보드 패널도 고급스러움과는 살짝 거리가 있다. 반면 천장 부분의 버튼과 조명은 정교하고 퀄리티가 높다. 상품 구성에 있어서 강약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부족한 기능은 추가 금액을 내고 벤츠코리아에서 마련한 패키지를 장착하면 된다. '커넥트 패키지'에는 애플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 등의 사용이 가능한 스마트폰 통합 패키지와 키리스-고, 앰비언트 라이팅, 휴대폰 무선 충전 기능, 미디어 케이블이 포함된다. 보다 스포티한 느낌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프로그레시브 패키지'에는 아티코 인조 가죽의 스포츠 시트를 포함한 프로그레시브 라인의 내외관 디자인과 파노라믹 선루프가 들어간다.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2열이다. 휠베이스가 전 세대 대비 29㎜나 늘어난 덕분에 만족할만한 무릎 공간을 구현했다. 370ℓ로 넓어진 트렁크도 마찬가지다. 바닥면을 깊게 파 놓아서 간이 선반을 제거하면 제법 높은 짐도 무리 없이 넣을 수 있다. 센터 콘솔과 글러브 박스를 비롯해 도어 안쪽 수납함도 깊은 편이다. 여러모로 공간 활용성만큼은 신형 A클래스가 갖는 매력 포인트로 손색없다.
국내 판매 중인 A클래스는 직렬 4기통 2.0ℓ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A 220 트림이다. 최고출력 190마력, 최대토크 30.6㎏·m를 발휘하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 가속 시간은 6.9초 만에 도달한다. 회사는 터보차저의 능력을 강화하고 가변 밸브 제어 기술을 통해 성능과 효율을 동시에 잡았다고 새 엔진을 소개했다. 시동을 걸고 일상적인 주행을 이어나갈 때는 가솔린 엔진이 주는 부드러운 감각이 일품이다. 가볍게 속도를 올리고 차는 산뜻하게 달려 나간다. 터보 래그나 걸걸거리는 소음도 거의 없어서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다.
변속기 반응은 매끄럽다. 민첩하게 바늘이 튀지는 않지만 위아래로 여러 번 변속을 반복해도 깔끔하고 정확하게 맞물린다. 엔진 회전수는 1,600에서 2,500rpm에서 가장 반응이 좋다. 한마디로 가장 많이 쓰는 실용 구간에서의 만족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매뉴얼 모드에서 패들 시프트를 활용하면 레드존 끝까지 물고 늘어져 엔진 출력을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다. 파워트레인 합이 훌륭해 다루기 쉽고 운전에 스트레스가 없다. 고속 주행에서는 벤츠 특유의 묵직한 안정감이 돋보인다. 바닥에 붙어 달리는 과정에서 탑승자는 저절로 차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다이내믹 셀렉트를 스포츠로 바꿨다.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드라이빙이 가능하다. 스로틀 반응도 한층 예민해지고 스티어링 휠도 묵직해진다. 의외의 발견은 서스펜션이다. 운전 모드에 따라 변화 폭이 크다. 에코와 컴포트에서는 고급 세단을 타고 있는 것처럼 편안했고 스포츠는 딱딱하게 굳어 차체를 움켜잡고 노면의 흐름을 운전자에게 전달했다.
벤츠는 서스펜션 연결부의 강도를 강화하고 방음 장치를 탑재하는 등 다양한 소음 저감 기술에 신경을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실내 소음 수준을 개선했으며 고급스러운 주행감을 완성했다고 덧붙였다. 정확한 수치로 알기는 힘들지만 차에 타는 모두가 고르게 만족할 만한 세팅이다.
전체적인 주행 성능이 좋다 보니 평범한 핸들링이 못내 아쉽다. 우레탄 소재가 의욕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반응이 여유로워 미세한 조종은 기대하기 힘들다. AMG가 아닌 차의 성격을 감안해 이해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반대로 제동 능력은 우수하다. 초반부터 차가 완전히 멈춰 설 때까지 일정한 답력을 제공한다. 또 거칠게 다뤄도 쉽게 지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신형 A클래스는 달리고 서는 기본기에 충실한 해치백이다. 예전 세대와 비교하면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운전의 즐거움을 더한다. 여기에 고속으로 갈수록 안정적인 자세와 편안한 감각이 타는 내내 만족스러웠다. 입문형 제품이지만 벤츠의 피는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운전을 하면서 스티어링 휠 가운데에 박혀있는 '세꼭지 별' 로고도 운전자의 자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다양한 편의 및 안전 기능을 선택 품목으로 만들어 진입 가격을 낮췄지만 이 전략이 제대로 먹힐지는 조금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더 뉴 A 220의 가격은 3,830만원이다.